김 령 문


2012-2013 독일 카쎌미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마이스터슐러과정 졸업 (Prof. Urs Luthi)
2007-2012 독일 카쎌미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졸업 (Prof. Urs Luthi)

Solo Exhibitions
2020 in d minor in b minor, 제 4회 포트폴리오박람회 최우수상 수상작가 전시, 서울예술재단, 서울
2019 in d minor in b minor,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8 Drift Klang, space xx, 서울
2016 Drift Klang, 대안공간 정다방 프로젝트, 서울
2012 Examenausstellung, Kunstbalkon, 카쎌, 독일
2011 Leidenschaftliche Leichtigkeit, Stellwerk, 카쎌, 독일

Group Exhibitions
2020 in d minor in b minor, 김지유?김령문 2인전, 봉봉방앗간, 강릉
2019 13기 프리뷰-오픈코드,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제5회 뉴 미디어 아트 국제전, CICA미술관, 김포
2018 ONGOING DIALOGUES, 제4회 포트폴리오 박람회 선정작가 결과발표전, 서울예술재단, 서울
분지, 우제길미술관, 광주
제4의 아트마켓, 경계없는 예술센터, 서울 문래동 로데오 웍 일대
유니온아트페어 2018 Let’s Make Together, 에스팩토리, 서울
갤러리9P 개막전, 갤러리구피, 서울
분지, 쉐마미술관, 청주
2017 FROHE ‘P’OSTERN, LAGE, 카쎌, 독일
2016 ASPECTS: New Media Art by Korean Artists, FAC 갤러리,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 켄터키, 미국
글로컬구애, 제16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갤러리 메이, 서울
때마침마침, 봉봉방앗간 & 콘크리트 플랫폼, 강릉
2015 Salon de Plain, 성과전, 모하창작스튜디오, 울산
소마 드로잉: 무심, 소마미술관, 서울
2014 오픈스튜디오, 토카예술공장, 서울
NOPRESSION, Kasseler Kunstverein, 카쎌, 독일
2013 Stipendium Junge Kunst 2013/14 - Die Wettbewerbsarbeiten, 램고, 독일
2012 Examenausstellung, Salzmannfabrik, 카쎌, 독일
YES,THIS YEAR IT´S DOCUMENTA, 크로이쯔베르크파빌리온, 베를린, 독일
2008 schlechte und misslungene Arbeiten, 팍크하우스 임 말카스텐팍, 뒤셀도로프, 독일

Award & Residency Programs
2020 서울문화재단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2019/2020 청주창작스튜디오 13기 장기입주작가
2018 제 4회 포트폴리오박람회 최우수상 수상
2017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 선정
2015 모하창작스튜디오 6기 하반기 입주작가
2014 소마드로잉센터 9기 아카이브 등록작가

소리의 얼굴(들)이 그리는 이미지, 김령문 작가

김남수(안무비평)


김령문 작가의 드로잉과 페인팅에서 느껴지는 마치 바람소리의 파형이 모래 그림을 그리듯 또는 물의 그림을 그리듯 자유로운 유동의 세계는 작가 자신의 이름에서 연유하는 어떤 영적인 무늬 같은 것에 물들게 된다. 이 무늬는 어둠의 속도를 빌어서 거기 서성거리고 있거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데, 이때의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이다.

SF작가 엘리자베스의 <어둠의 속도>에서는 어느 자폐증 아동이 등장하여 질문하는데,

“어머니! 빛이 빨라요, 어둠이 빨라요?” “당연히 빛이 빠르지, 우주에서 가장 빠르단다.” “그럼 빛은 어디를 달려가고 있나요?” “어둠 속이지.” “빛이 달려가기 전에 어둠이 거기 있었다면, 어둠이 더 빠른 것 아닌가요?”

어둠이 더 빠르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이란 그리스 신화에서 ‘감추어진 신성’을 표현하는 모체였다. 이는 자연의 격렬한 힘이 아니라 소리의 가냘픈 속삭임 속에서, 건 듯 부는 산들바람의 음미할 듯 말 듯한 피부접촉 과정에서, 그리고 침묵을 굉음으로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미소음으로부터 가능했다. 어둠은 자신이 왜 초월적 돌파를 빛에게 깔아줄 수 있는지 미세한 움직임이 입증하는 것이었다. 즉 밤의 여신 닉스는 어둠을 뜻하는 에레보스와 연금술적 결합을 이루게 되고 어두운 밤의 소리 속에서 카오스의 자손들을 낳게 된다.

김령문 작가의 드로잉은 이 어두운 밤의 소리를 포착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자손들의 억압당하지 않은 무의식이 표현되는 순간들, 수직적 시간의 이미지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 수직적 시간 이미지는 섬광처럼 검은색 바탕 위에서 춤을 추는데, 그때마다 카오스는 자신이 낳은 자손들을 삼켰다가 다시 배출한다. 오선지 위의 칼로리 많은 콩나물 음표들, 옆으로 걷는 나무들, 일순 환해졌다가 어둠 속에 잠기는 불꽃놀이, 아직 말 배우지 못한 아동들의 찍찍 긋는 우발적인 선들 등등 수많은 이미지의 산종[散種]을 겪게 된다. 물론 김령문 작가의 작품을 십분 이상 본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이 이미지 산종은 미끄러진다기보다 뿌려진다는 쪽이 좀더 근사하다. 미끄러지는 것은 하나의 총체적인 주인기표가 자신의 흔적들을 피겨스케이팅 하듯 의미(들)을 미끄러지게 하는 것이지만, 뿌려진다는 것은 중심보다는 탈중심에 가까운 어떤 가능성의 잠재적 이미지가 덩이줄기처럼 사방으로 느낌(들)을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세한 구분을 짓는 이유는 김령문 작가의 이 순간적인 수직성, 수직적 시간의 이미지가 어둠을, 어둠의 속도를 배경으로 한 어떤 무의식의 현상학 같기 때문이다.

이 현상학이 펼쳐지는 장소가 에레보스, 즉 “땅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장소’” 라는 것이고, 그 깊이의 장소로부터 심층 무의식이 길어올려져 한순간에 뿌려진다는 느낌이다. 비매개적으로, 비담론적으로. 사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이 에레보스의 장소는 막걸리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초저녁 어스름 마을어귀에 이르러 웬 다리 하나 있는 도깨비랑 씨름하게 되는 비몽사몽[phase, hypnagogia]에 가깝다. 몽상적 단계, 이미지의 상상적 장소가 김령문 작가에게 있는 것이고, 이는 곧 어떤 본능과의 접촉을 기다린다.

즉 그저 무의식 자신의 죽음본능 ? 들뢰즈는 프로이트의 ‘죽음충동’을 교정하여 원래의 ‘죽음본능’으로 돌려놓는데, 이는 “차가움”과 “준엄함”으로 초감각적인 자연을 부르는 힘이다 ?을 가동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김령문 작가는 그 본능의 순정한 감성의 차가움을 자연 자체가 본래 갖고 있는 차가움으로 엄격하게 표출한다. 비몽사몽간에 만난 도깨비가 토해내는 비밀은 만만치 않다.

“마침내 ‘달빛’이 자연의 비밀을 우리에게 넘겨준다. 자연 자체가 차갑고 모성적이며 준엄하다.”(PSM 중에서)

김령문 작가의 드로잉과 페인팅에서 음악적이면서도 수학적인 하모니, 일종의 무리수적인 역설의 하모니는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들창의 프레임을 통과해서 우리에게 말 건네고 손 건네는 ‘달빛’처럼 무엇인가가 걸러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흔히 우리가 자연의 질서라고 믿고 있는 것에 의해 은폐되고 있는 자연 자체의 본능적인 깊이, 그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한다.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달리 달려가는 행위가 아니라 ‘거기 있음’ 즉 일종의 “있음의 속도”에 다름아니고, 이 “있음의 속도”에 의한 필터링으로 김령문 작가의 회화는 우리가 인간의 눈으로 보고 있는 자연의 곁모습 너머에서 작동하는 깊은 본모습을 드러낸다. “있음의 속도”가 번성하는 검은 바탕, 이는 말레비치, 로스코 그리고 리히터가 공유하던 ‘죽음본능’의 타블로이다.

그럼 음악적이면서 수학적인 하모니를 이루는 사물은 무엇인가. 김령문 작가에게 이는 쇤베르크 이후의 현대음악, 현재는 스펙트럼 음악이라는 저만치 달려가는 소리의 세계인 동시에 바람의 세계, 혹은 구름의 세계, 그리고 애벌레 주체의 세계 같은 것이 아닐까. 본래 자연의 깊은 면모는 인간화되기 이전의 지각적 감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으며, 어떤 예술적 전략 하에서만 겨우 그 껍질을 벗겨내게 된다. 차갑고도 자애로우며, 준엄하면서도 어딘가 편안하게 해주는 전략. 그것이 무리수적인 노이즈 음악의 파형적 무늬, 하늬바람의 곡선, 순환하는 파도의 흰 물결, 나무 이미지, 구름들이 번개를 잠재시키고 있는 으름장, 애벌레 주체의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뼈없는 영역 같은 것이 통하는 이유이고, 이러한 다이어그램 이미지(들)은 김령문 작가에게 기본적으로 수직적 시간의 이미지로부터 잉태되고 생산되어 나온다고 판단하는 근거이다.

슈타이너는 “청색은 내부를 향해 빛난다” 라고 색채의 본질을 다루면서 어둠으로부터 나온 청색광을 괴테보다 한걸음 더 내디뎠지만, 어쩌면 괴테보다 어둠의 속도에서 멀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김령문 작가는 “청색은 내부에서 어둠의 속도를 가늠하고 있다” 라고 테제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 어둠의 속도를 가늠하는 지점들에서 소리는, 음악은 ‘감추어진 신성’을 농축한 문자추상으로 바뀔려는 임계점을 살짝 살짝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달 月 같기도 하고, 한시 한 자락 같기도 한 이 이미지는 이제 다이어그램 이미지(들)을 머금고 다시 한번 그래픽 이미지로 시각화되려는 찰나에, 수직적 시간에 걸려 있다. 청색은 여기서 이 과정의 효소처럼 작용하여 일종의 쪽빛 ? 어둠이 강한 청색으로서 여기서 ‘생명의 빛’으로서 ‘푸르다’가 나온다고 동아시아 사람들은 믿었다 ? 이 잠재해 있음을 느낀다고 할까. 다른 색들의 구름 같은 조력은 이 쪽빛의 권능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그 권능 하에 있다고 할까. 빛으로 화하는 색들 역시 쪽빛 그 내부의 어두운 장소가 가진 힘을 의식하고 있음이다.

이처럼 김령문 작가는 슈타이너처럼 내부에서 빛이 스스로를 환하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속도가 더 많은 생명의 빛을 잉태하고 있고, 그것이 가득한 이미지(들), 이미지(들)이 낳는 이미지(들)을 다시 생산하고 있다고 본다. 즉 자연의 숨은 차원은 차가우면서도 엄격하게 이러한 카오스를 더듬거리면서 애벌레처럼 무늬를 만들고 있다. 이것을 바람이 건 듯 불 듯 스쳐가는 밤의 소리가 빚어내는 얼굴이라고, 이것이 회화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중심이라고 보고자 판단하고자 한다.